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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녀석들 #2. 나치가 낳은 죽음의 천사, 요제프 멩겔레



요제프 맹겔레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의 생체 실험을 대표하는 인물로, 동양에 731부대의 이시히 시로가 있다면 서양에는 '죽음의 천사'라 불린 요제프 멩겔레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당시 전체주의 하에, 나치는 인종 청소 운운하며 많은 유대인, 집시들을 가스실에서 학살했고, 그들 중 일부는 그냥 죽이지 않고 생체 실험을 자행했다. 그러나 정책상 생체 실험을 했다곤 해도, 그 잔인함이란 수행자의 정신상태가 틀림없이 정상이 아닐 거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기 충분한데, 그런 의미에서 그를 나쁜 녀석들 두번째 인물로 선정, 오늘은 나치의 생체 실험 그 중심에 있던 요제프 맹겔레를 조명해본다.


요제프 멩겔레
Josef Mengele, 1911/03/16-1979/02/07



생체 실험 의무관

요제프 멩겔레는 1911년 3월 16일에 태어나 1979년 2월 7일에 죽은 독일의 의무관이다. 1938년에 히틀러 친위대인 SS부대의 일원이 되었으며, 1943년에 아우슈비츠와 비르케나우 강제수용소의 의무관을 거쳐, 1944년에는 비르케나우 강제수용소의 주임 의무관이 된다. 그는 의무관의 권한을 사용해 그가 생각해왔던 생체 실험을 본격적으로 구현하는데, 이 생체 실험은 2차 세계대전이 막을 내리는 1945년까지 계속된다.

731부대의 이시이 시로가 행했던 생체 실험의 주목적이 세균전을 위함에 있었다면, 요제프 멩겔레의 생체 실험은 주로 그가 연구한 인류학을 기반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그의 실험은 인류학을 기반으로 진행했다고 하기에는 다소 엽기적인 실험들이라 인류학이라는 학문 카테고리를 민망하게 만드는 수준이었다. 인위적으로 몸의 일부를 붙인 샴쌍둥이를 만들어 인간 개체 간의 기관이 서로 공유될 수 있는가 하는 실험, 눈동자 색과 같이 인종 고유의 특질을 인위적으로 바꾸는 실험 등이 그 예다.

② 인류학 박사 + 의학

요제프 멩겔레는 뮌헨 대학에서 인류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의학 학위를 받았다. 이렇게 공부를 한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싶겠지만 이는 그의 잘못된 믿음 때문이었다. 그는 나치의 잘못된 우생학을 믿었다. 우생학이란 유전적으로 인간을 개량하는 것을 목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으로 1883년 영국의 F.골턴이 창시했는데, 아돌프 히틀러는 게르만족이 제일 우수하고 다른 민족은 열등하다 믿어 우월한 자신들이 세상을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 유대인 학살 또한 이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히틀러 기준에서는 유대인은 부적격 인종이었기 때문이었다. (훗날 뮌헨 대학과 프랑크푸르트 대학은 요제프 멩겔레의 학위를 취소한다.)

편집자 주 히틀러가 유대인을 부적격 인종이라고 한 데에는 유대인이 자격 미달이라기 보다는 게르만족보다 더 뛰어났기 때문에 아예 씨를 말려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보는 게 더 나을 듯 싶다. 이는 히틀러가 쓴 유일한 저서인 '나의 투쟁'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어린 시절 유대인에게 당했던 게 히틀러에겐 트라우마로 작용한 듯 보인다. 


죽음의 천사
Angel of Death

사람들은 그를 '죽음의 천사'라고 불렀다. 그것은 그가 교양있고, 품위있어 보이는 외모와 몸가짐에도 불구하고, 생각만 해도 참혹한 생체실험을 자행해 수많은 사람을 고통과 죽음으로 몰고 갔기 때문이다.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간호사 베라 알렉산더의 증언에 따르면, 요제프 멩겔라는 자신에게 존칭을 쓰며 앉기를 권했는데, 그 태도가 지극히 예의 바르고 품격있었다고 한다.

① 3가지 제복을 가진 의무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는 요제프 맹겔레를 세 가지 제복을 가진 사람이라고 불렀다. 그가 하얀 가운을 입고 있으면 수용자들에게 아주 친절하게 대했으며, 초록색 수술복을 입고 나타나면 곧 수용자 중 누군가는 가죽끈에 묶여서 수술대로 갔고, 만약 그가 회색 제복을 입고 나타난다면 직접 받아보기 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생체실험 끝에 죽어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발견해야 했다.

② 3가지 수신호를 하는 의무관

포로들을 실은 기차가 도착하면 멩겔레는 그들을 맞이하며 한 명, 한 명에게 특유의 수신호를 취했는데, 수신호는 세 가지였다. 멩겔레의 손이 왼쪽을 가리키면 그것은 독가스실을 의미했고, 오른쪽으로 기울면 강제노동소로 가야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손등을 툭툭 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생체실험을 의미했다. 당시 그 모습을 본 한 간호사는 그가 어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오른쪽과 왼쪽을 번갈아 가리키는 모습이 마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듯 리드미컬했다고 한다.


생체 실험
Medical Experiment on a Living Body

니슬리 미클로시는 비록 유태인이었지만, 법의학, 독일어를 공부한 덕분에 죽음을 피하고 그의 조수로 일할 수 있었다. 그는 훗날 멩겔레의 실험들에 대한 기록을 남겼는데, 그에 따르면 포로들 중 멩겔레가 손등을 툭툭 쳐 실험 대상으로 분류된 이들은 수용소의 일반인들보다 좋은 곳에 주거했고, 좋은 음식을 먹었다. 그러나 이는 그들을 보다 인간적으로 대우한 것이 아니라, 보다 좋은 실험 대상물로의 상태를 유지하려는 조치였다. 이렇게 실험으로 희생된 사람은 40만명으로 추산된다.

① 인종 관련

그가 배운 유전 연구학은 그로 하여금 고약한 공상을 실험으로 옮기게 했는데, 먼저 그가 궁금했던 것은 화학 물질로 눈의 빛깔이 변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는 집시족에게 게르만족의 특성인 금발과 푸른 눈을 부여한답시고 눈에 푸른 물감을 주사하는 실험을 했고, 애꿎은 실험 대상자들의 눈만 멀게 만든다. 이와 더불어 인종에 따른 신체적 특질을 연구하는 실험은 마취도 없이 이를 뽑고 늑골을 뽑아냈는데, 이렇게 해서 죽은 실험 대상자의 눈은 멩겔라의 수집품이었다고 한다.

② 상처 관련

멩겔라는 전쟁 중에 일어날 수 있는 각종 상처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면서, 일부러 상처를 입힌 뒤 그 위에 유리 가루나 톱밥을 문질러 더욱 치명적이고 고통스러운 상처를 만들어냈으며, 피실험자들의 정맥이나 동맥을 묶어 전쟁 중의 가상 상황들을 재현했다. 이밖에 그는 독이 묻은 총알을 쏴서 수감자들에게 부상을 입히고, 그런 다음 독극물이 몸에 침투했을 때 시간에 따른 진행과 영향력을 관찰하는 실험을 하기도 했다.

③ 불임 실험

그는 특별한 임무를 부여한다는 명목으로 건강하고 젊은 여성들을 모집했고, 당시 사는 것을 거의 포기하고 있던 여자들이 지원했었다. 멩겔라는 이들을 대상으로 전기 충격 요법이나 이른바 X-선 실험을 통해 불임 수술을 실시했으며, 아울러 남성들에게는 거세 실험을 실시했는데, 뒤에 이 실험을 기반으로 나치 진영의 호르스트 슈만, 빅터 브라크는 하루에 수천명의 사람들을 불임시킬 수 있는 장치인  X선 불임장치를 개발한다. 

④ 쌍둥이 대상 실험

그는 유난히 쌍둥이에게 집착하며 수감자들 중 쌍둥이 아이들은 이른바 멩겔레의 아이들이라 불렸다. 주로 쌍둥이 중 한 아이에게 임의의 세균이나 약물을 주사한 뒤 그 변화를 살펴, 주사하지 않은 다른 쌍둥이와 비교하였다. 이것으로 보아 그는 태어나고 자란 환경이 비슷한 쌍둥이가 좋은 실험군과 대조군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듯 싶다. 멩겔라의 실험은 20여개월 동안 무려 1,600여 쌍의 쌍둥이를 망라하며, 이 중 살아남은 것이 200쌍 정도였고 각종 후유증으로 1980년대는 100쌍만이 살아남게 된다.

멩겔라는 쌍둥이가 정말 뱃속까지 동일한 지 알아보기 위해 쌍둥이를 재운 뒤 온몸을 해부하는가 하면, 혈액과 장기를 교환해보기도 한다. 나아가 인위적으로 샴쌍둥이로 만든다고 몸을 붙여버리기도 하는데, 이 쌍둥이의 경우 뒤에 연결되었던 정맥 부위에 염증이 생겨 썪어들어가는 부작용을 겪어야 했다. 당시 실험에 동원된 아이들은 쌍둥이들을 특별대우하던 멩겔레의 친절함 때문에 멩겔레 삼촌이라고 부르기도 했으며, 죽기 직전까지 자신이 죽을 것을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⑤ 인체 극한 실험

멩겔라는 얼음이 떠다니는 차가운 물에 사람을 3시간 담그고, 이때 일어나는 신체 변화를 관찰했고, 이 피실험자를 다시 따뜻한 곳으로 옮겨두고 신체의 변화를 관찰했다. 당연히 저체온증과 면역력 저하로 상당수가 사망했고, 이외에도 사람의 피를 바닷물로 대체 가능한지에 대한 바닷물 주사 실험과 극저압, 고압에서 인체가 얼마나 견디는가 실험하는 등, 그의 인체 극한 실험은 731부대의 요시이 시로가 했던 그것과 유사하다. 사람을 실험 대상 이상으로 보지 않는 냉혈함과 파렴치함이 겹쳐지면, 벌어지는 참상은 그렇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2차 세계대전 후
After World War II

① 도주

멩겔레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전범으로 분류되지만 유유히 추적망을 따돌린다. 한때 미군에게 잡혔다가 미군의 확인 미수로 운좋게 도주에 성공하여 독일 남부에서 4년간 농부 행세를 하다가 남미로 간다. 거기서 그는 이름을 그때 그때 바꿔가며 비교적 편안한 삶을 영위했는데, 30여년 동안 재혼까지 해가며 안전하게 살지만 80년대부터는 그를 잡기 위해 수십년동안 노력했던 유태인들에 의해 서서히 정체가 드러나게 된다.

② 사망

그러나 그는 죽을 때까지 운이 좋았다. 그는 1979년 블라질 상파울루에서 물놀이를 하다 심장마비에 의해 사망했는데, 그의 실체는 시신과 함께 묻혔지만, 결국 1985년 유골 발굴이 이루어졌고, 1993년에 이르러서야 DNA 검사를 통해 그가 요제프 맹겔레라는 게 확인된다. 요제프 멩겔라는 만년에도 자신은 아무도 죽인 적이 없다고 부정하거나 자신의 만행을 축소시키는 언행을 일삼았다. 특히 어느 나라든 전시에는 각종 위험 인물들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 운영이 불가피하고, 자신은 실험을 했을 뿐이라며 죽을 때까지 자신의 삶을 후회하거나 반성하는 기미를 내비치지 않은 걸로 알려져 있다.

***

그의 실험에 투입되어 살아남은 쌍둥이 중 한 명인 모셰 오퍼는 이렇게 말한다. 자신에게 어떤 약품이 주사되었지만, 지금까지 그것이 무엇인 줄 모르며, 그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몸의 3분의 2에 장애가 있고 간질로 인한 발작도 하게 되어,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라고. 그의 고백 앞에 우리는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는 바람만을 가져볼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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