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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vs 실화 #13. 히말라야 - 엄홍길이 이끄는 휴먼 원정대



필자가 영화를 본 이래로 산악 영화는 두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그리 많지 않은데, 작년에는 두 편이나 개봉했다. <에베레스트>는 이미 개봉 시점에서 스티코 매거진에서 '영화 vs 실화' 코너에서 다루긴 했지만, <히말라야>는 개봉한 지 한참 지난 이제서야 다루는 건 국내작이라서가 아니라 <에베레스트>를 다루면서 관련된 얘기들을 많이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둘은 전혀 다른 사건을 다루고 있고, <히말라야>는 한국인 정서에 맞게 극적 구성을 하다 보니 실제와 다른 부분들도 있어서 이에 대해 정리한다.


공식적으로는 두 번째 완등자




이미 스티코 매거진에서는 영화 <에베레스트>에 관련된 글을 게재하면서 국내에서 고봉 14좌를 완등한 산악인들에 대한 글을 게재한 바 있다. 그 글에는 박영석 대장이 첫 번째고 엄홍길 대장이 두 번째로 되어 있는데, <히말라야>에서는 엄홍길 대장이 국내 최초라고 되어 있다. 왜 그런가 하면, 1993년 시샤팡마와 1995년 로체 등정 의혹 때문에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았던 것. 그래서 위키피디아나 해외 산악 등반 기록 사이트인 서밋포스트에는 박영석 대장 다음으로 두 번째로 기록되어 있는 거다. 다음은 엄홍길 대장의 완등 기록이다.

봉우리명완등일자
에베레스트(Everest)1988/09/26
초오유(Cho Oyu)1993/09/10
시샤팡마(Shishapangma) - 등정 의혹1993/09/29
마칼루(Makalu)1995/05/08
브로드피크(Broad Peak)1995/07/12
로체(Lhotse) - 등정 의혹1995/10/02
다울라기리 1봉(Dhaulagiri I)1996/05/01
마나슬루(Manaslu)1996/09/27
가셔브룸 1봉(Gasherbrum I)1997/07/09
가셔브룸 2봉(Gasherbrum II)1997/07/16
안나푸르나 1봉(Annapurna I)1999/04/29
낭가파르바트(Nanga Parbat)1999/07/12
칸첸중가(Kangchenjunga)2000/05/19
K2(K2)2000/07/31
로체(Lhotse) - 재등정
2001년 봄
시샤팡마(Shishapangma) - 재등정2001/09/21
반면 박영석 대장은 2001년 7월 22일 K2 완등이 고봉 14좌의 마지막 완등이었다. 엄홍길 대장보다 2개월 앞선 기록이다. 이로 인해 외국에서는 박영석 대장이 세계에서 8번째로, 엄홍길 대장이 9번째로 기록되었던 것. 엄홍길 대장을 깎아내리려는 의도로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 내막이 그렇단 얘기다. 스티코 매거진에서는 공식적인 통계 자료를 사용하여 자료를 정리하다 보니 기존 글에서도 엄홍길 대장을 두 번째로 소개했던 것이다. 

* 스티코 매거진은 신뢰할 만한 정보를 제공하려고 하다 보니 공식적인 자료를 활용한다. 만약 잘못된 정보가 있다거나 하면 언제든지 지적해주면 고마울 따름. <히말라야>를 본 이후에, 아래 글에 추가적으로 주석을 달아뒀다.


* 이와 함께 좀 더 자세한 내용을 담은 영상을 제작하여 스티코 매거진 유투브 채널에 공개했으니 보고, 스티코 매거진 유투브 채널도 구독하면 감사할 따름.


14좌 vs 16좌




엄홍길 대장은 전세계에 해발 8,000m가 넘는 봉우리 16개를 완등한 최초의 인물이다. 반만 맞다. 16좌 완등한 건 맞고, 그것이 최초인지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집계를 하지 않는 기록이다 보니 모른다가 정확한 표현이 아닐까 싶다. 16좌 완등은 공식적으로 어디서 인정해주는 그런 기록은 아니다. 왜 그런고 하니 같은 산줄기에 있는 8,000m 넘는 봉우리의 경우, 더 높은 봉우리만 인정한 게 고봉 14좌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엄홍길 대장이 마지막으로 완등했던 로체샤르의 경우는 8,382m의 봉우리지만, 로체와 같은 산줄기에 있어 로체샤르는 고봉 14좌에 포함시키지 않고 로체만 포함시킨 것. 참고로 로체는 8,516m 봉우리다. 

결국 공식적으로 집계를 하지 않으니 설령 이전에 16좌 완등한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알 턱이 없다. 국내에서 '세계 최초'라고 하면서 얘기할 뿐이다. 이렇다 하여 엄홍길 대장의 위업이 대단치 않은 거라 얘기하는 게 아니다. 고봉 14좌 완등이라는 기록은 정말 목숨을 걸어야만 달성할 수 있는 일이며, 비록 공식적으로는 2번째로 기록되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엄홍길 대장이 1993년 시샤팡마를, 1995년 로체를 등정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니 말이다. 그러나 16좌는 국제적으로 인정되는 기록이 아니니, 아마도 영화 <히말라야>를 외국에 상영하게 되면 "이거 뭥미?"라는 소리를 들을 법도 한 내용이다. 이하 엄홍길 대장의 고봉 14좌 완등 이후, 나머지 8,000m 고봉 등정 일자다.

봉우리명완등일자
얄룽캉(칸첸중가 서봉)2004/05/05
로체샤르(로체의 위성봉)2007/05/31

그러나 엄홍길 대장과는 달리 오은선 대장의 등정 의혹에 대한 오은선 대장의 행동은 지적되어야 마땅하다. 이는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도 '오은선 칸첸중가 등정의 진실' 편에서 다루었으니 보길 바란다. 최근 국정 교과서 논란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얘기지만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봐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특히나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공만 보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잘못된 태도다. 오은선 대장의 위업을 폄하하는 건 아니지만 그녀의 등정 의혹은 지적받아 마땅하고 그에 대한 오은선 대장의 답변과 대응은 상당히 잘못되었다.

국내 언론 매체들(산악 전문 잡지 포함)에서 사용하는 표현들을 잘 보면, 엄홍길 대장은 국내 최초, 오은선 대장은 여성 최초라는 수식어를 붙여서 표현하지만 이는 엄밀히 얘기하면 잘못된 표현이다. 국내 최초가 아니라 하여 위업에 흠을 내는 것도 아닌데, 그런 표현을 사용하는 이유는 대중들은 1등만 기억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런 걸 보면 그렇게 표현하는 이들을 잘못되었다고 해야할 지 아니면 1등만 기억하는 대중이 잘못되었다고 해야할 지 참 애매하다.


실존 인물과 영화 속 캐릭터




① 엄홍길과 박무택



엄홍길 대장과 박무택은 실제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다. 엄홍길 대장의 14좌 등정 중에 2000년 칸첸중가, K2, 2001년 시샤팡마를 함께 했다. 이후 2002년에 함께 에베레스트를 등정했다 하니, 둘의 사이가 각별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왜냐면 엄홍길 대장의 입장에서는 목표가 16좌 완등인데 14좌 완등의 위업을 달성하고 15좌, 16좌를 등정하지 않고 박무택과 함께 자신은 등정했던 에베레스트를 갔으니 말이다. 당시 박무택은 1996년 가셔브룸 2봉을 시작으로 엄홍길 대장과 고봉 4좌를 했으니 고봉 5좌를 완등한 한국 산악계 차세대 주자였다. 참고로 고봉 14좌를 완등했다고 주장하지만 인정받지 못하는 오은선 대장이 그때까지만 해도 가셔브룸 2봉 하나만 완등했을 정도.

② 박정복의 실존 인물은 백준호



김인권이 분한 박정복 역의 실존 인물은 백준호다. 당시 박무택이 원정대장이었고, 백준호가 원정부대장이었는데, 소식을 듣고 구조하러 나선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하여 <히말라야>에서처럼 혼자 간 건 아니고, 누리란 이름의 셀파 1명과 함께 나섰던 것. 구조 등반 10시간이 지나서야 박무택과 만날 수 있었고, 셀파와 함께 박무택을 데리고 하산하려 했지만, 산소 없이 오랜 시간을 추위와 싸우면서 고갈된 체력 때문에 박무택은 제대로 걷지를 못했다. 셀파의 말에 따르면, 데리고 내려오면서 두 번 쓰러졌다 한다. 결국 백준호는 셀파를 먼저 내려보낸 후에 좀 있다 자신도 내려오는데 끝내 백준호도 돌아오지 못했다.

③ 조명애는 오은선을 모델로 했다지만 가상의 인물



원정대의 유일한 홍일점인 조명애는 요즈음 영화나 드라마에서 감초 역할 톡톡히 하고 있는 라미란이 맡았는데, 일각에서는 오은선을 모델로 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건 아마도 여성 산악인으로 가장 유명하니까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오은선은 박무택 대장이 이끌던 원정대의 대원이었다. 비록 박무택 대장은 2004년 5월 20일 산과 하나가 되었지만 그 날 오은선 대원은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하여 아시아 여성 최초 단독 등정이란 기록을 세운다. 그러나 2005년 엄홍길이 이끄는 휴먼 원정대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고로 <히말라야> 속 조명애는 오은선과는 전혀 다른 가상의 인물이다.


박무택 대장이 이끌던 에베레스트 원정대, 앞줄 중간에 오은선씨가 있다.

당시 오은선 대원이 에베레스트를 등정하면서 박무택 대장의 시신을 발견했다는 교신 내용이 있어 이후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사실 그렇게 높은 상황에서는 자기 몸 가누기도 힘들기 때문에 이를 두고 비판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다만 오은선이 비판받아야 할 부분은 칸첸중가 등정의 진위 여부에 대한 그녀의 태도다. 참고로 구글에서 "엄홍길 휴먼 원정대"로 이미지 검색해보면, 그때 참여했던 이들의 사진을 볼 수 있는데, 여성 대원은 한 명도 없다.

④ 조성하가 맡은 이동규 역은 손칠규



마지막으로 엄홍길 대장보다 손윗사람으로 나오는 이동규 역의 실존인물은 손칠규로 엄홍길 대장의 선배 산악인이다. 2005년 휴먼 원정대를 다룬 MBC 특별기획 <아! 에베레스트>에서 보면, 손칠규도 원정대에 참여한 것으로 나오는데, 베이스 캠프에서 무전을 하면서 "수고했네. 고맙네. 조심해서 내려오게."하면서 눈물 흘리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영화 <히말라야>는 영화적으로 각색된 부분이 있으니 휴먼 원정대의 실화가 궁금하면, 2부작 <아! 에베레스트>를 보길 권한다. 보통 영화와 같은 실화의 경우, 어지간하면 다큐멘터리로 다 나와 있다. '영화 vs 실화' 12번째로 다루었던 <하늘을 걷는 남자>도 그렇듯이 말이다.


절벽의 비바크



<히말라야>에서 보면 엄홍길 대장과 박무택이 칸첸중가 등정할 때, 정상을 목전에 두고 빙벽에서 비바크(텐트없이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밤을 새는 것)한 게 나오는데, 이는 사실이다. 사실과 약간 다른 점은 박무택이 엄홍길 대장보다 3m 정도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영화 <히말라야>에서와 같이 나란히 앉아 있었던 건 아니었다. 빙벽에 엉덩이만 살짝 걸터앉을 정도로 홈을 파서 10시간 동안 앉아서 밤을 지샜다고 하는데, 가히 상상하기 힘들 정도다.

한 번 생각해보자. 비바크를 한 위치가 칸첸중가(8,588m)에서 100m 정도 아래라고 하니 해발 8,488m 정도라는 얘긴데, 이 정도 높이라고 하면, 고봉 14좌 중에서 5번째로 높은 마칼루보다 더 높은 고도다. 보통 1,000m 높이마다 기온은 평균 6.5도 정도 떨어지니, 평지에서의 온도를 26도라고 가정할 경우 비바크한 고도에서는 영하 30도 정도 된다. 게다가 밤이었고, 바람까지 부니 기온은 더 떨어지고, 체감온도는 이보다 더할테니 여기서 10시간을 버텼다는 건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엄홍길 대장과 박무택 사이가 끈끈했던 건 이런 경험을 둘만이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게다가 그 경험이 죽음을 목전에 두고 나눴던 경험이기 때문에 더욱 강렬했을 터. 


박무택의 아내




정유미가 맡았던 박무택 아내의 경우, <히말라야>에서는 휴먼 원정대의 베이스 캠프까지 가서 무전도 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 가지는 않았다. 사실 베이스캠프라고 하더라도 해발 6,400m에 위치하고 있어 훈련받지 않은 일반인이 있으려면 취재 기자들과 함께 올라간 원정대와 같이 매일 500m씩 천천히 고도를 올려가면서 적응을 했어야 했다. 그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휴먼 원정대에 참여했던 기자들 중에는 고산병으로 중도에 하산한 경우들이 있었다.


설맹


박무택 대장이 에베레스트를 하산하면서 걸렸다는 설맹은 안구에 생기는 염증이다. 눈(내리는 눈)의 경우, 빛을 80% 반사시키기 때문에 장시간 설원을 보고 있으면 걸리기 쉽다. 박무택 대장의 경우, 하산하는 도중에 고글이 벗겨지는 걸로 <히말라야>에서는 나오지만 실제로는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고글을 벗고 장시간 자외선에 노출되어 있었다고 전해진다. 산악인이었다면 그랬을 경우에 설맹이 올 수도 있다는 걸 모를 리 없었을텐데, 다소 부주의한 게 아닌가 싶다. 이 부분은 오은선씨도 TV에 나와서 지적한 바 있다.


초모랑마 휴먼 원정대





영화 속에 나오는 초모랑마 휴먼 원정대는 실제 이름이다. 초모랑마란 에베레스트를 지칭하는 티벳어. 이에 대해서는 MBC 2부작 특별기획 <아! 에베레스트>에 잘 나온다. 당시 엄홍길 대장이 은퇴했던 건 아니었고, 얄룽캉을 완등하고 돌아와서 박무택 대장의 조난 소식을 듣는다. 이후 18명이 참여한 초모랑마 휴먼 원정대를 결성, 2005년 3월 7일 발대식을 갖고 일주일 뒤인 14일 인천공항을 출발한다. 


등정 당시 엄홍길 대장의 몸상태는 상당히 좋지 않았다. 계속되는 기침으로 인해 가래가 끓고, 이로 인해 숨쉬기도 힘들고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숨을 쉬기 곤란하니 걸음은 더뎠고, 엄홍길 대장 스스로도 자신은 8,000m 아래에서 원정대 지휘만 하는 게 좋겠다면서 올라갔지만, 느리긴 해도 박무택 대장의 시신을 만날 때까지 계속해서 올라갔다. 다만 박무택 시신을 발견했던 장소에서 재회한 건 아니고, 먼저 올라간 대원들이 시신을 수습해서 데리고 내려오는 와중에 재회한다. 박무택 대장의 기일인 5월 20일을 9일 넘긴 5월 29일의 일이었다.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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