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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vs 실화 #6. 러시: 더 라이벌 - 가슴 뛰게 만드는 영화



<러시: 더 라이벌>은 레이싱 영화다. 레이싱하니까 차가 떠오르고, 차는 남자들의 전유물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2015 서울 모터쇼에 가보니 이젠 여자들도 차에 대한 관심 많아져서 꼭 그렇지만도 않은 거 같다. 마찬가지로 이 영화 레이싱 영화기에 남자들만 좋아할 법하지만 결코 그렇지는 않을 듯하다. 비록 우리나라에서는 그리 큰 인기가 없는 F1을 무대로 하고 있지만, 두 라이벌의 대결이 흥미진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두 라이벌이 실존 인물이고 영화 속 내용이 실화를 기반으로 했다니 그 감흥이 더 클 수 밖에 없을 듯. 보통 기대를 많이 하게 되면 기대에 못 미쳐 실망하는 영화도 많은데, <러시: 더 라이벌>은 기대도 컸는데 기대 이상이었다. 적어도 필자에겐.

최근 메이웨더와 파퀴아오의 대결이 화제가 되었으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기대에 못 미치는 경기로 인해 많은 이들에게 실망을 줬었다. 승패를 떠나 사람들을 짜릿한 명승부를 원한다. <러시: 더 라이벌>은 그런 의미에서 충분히 만족할 만한 모습을 보여준다. 앞에서 여자들이 봐도 재밌을 만한 영화라고는 소개했지만 이 영화는 뜨거운 가슴을 가진 남자에게 필히 보라고 권하고픈 영화다. 분명 가슴 속에서 뭔가 타오르는 걸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비록 이 코너가 영화와 실제가 얼마나 달랐는 지를 소개하는 코너지만, 론 하워드 감독이 실화에 충실해서 제작했기에 차이가 거의 없다. 그래서 영화에서 보여주지 못한 내용들과 함께 소개하도록 한다. 즉 아래 내용들이 모두 영화에 나오는 건 아니지만 영화에 나오는 부분에 있어서는 실제와 다를 바 없단 얘기다.

* 코너 특성상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되어 있으니, 영화를 보고 난 후에 읽어보시길 권함.


F1
Fomula One

① F3

영화의 초반 장면은 1976년 8월 1일에 열린 독일 그랑프리(German Grand Prix)지만 이내 니키 라우다와 제임스 헌트의 F3 레이서 시절로 돌아간다. 둘은 F3 레이서 시절부터 라이벌이었는데,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부터 얘기가 시작되는 것. 영화 제목이 <러시: 더 라이벌> 아닌가! F3 또한 포뮬러 경기 중에 하나다. 메이저 리그가 있으면 마이너 리그가 있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포뮬러 경기는 Fomula Ford, F3, F3000(F2), F1으로 나뉘는데, 각 규정에 맞는 자동차로 경기를 한다. 큰 차이는 엔진에 있지만 그 외에도 여러 규정이 있으므로 여기서 언급은 생략한다. 보통 작은 경기부터 시작하여 실력을 쌓아 F1으로 진출한다.

② 월드 챔피언

영화에서도 한 번의 경기가 아니라 여러 번의 경기가 나오는데, 이는 각 경기에서 얻은 포인트를 합산하여 최종적으로 그 해의 월드 챔피언을 선별하기 때문이다. 여러 국가에서 그랑프리 경기가 열리는데 우리나라도 2010년부터 한국 그랑프리를 영암에서 개최했지만, 2013년까지 개최하고 이후 개최권을 반납한 상태다. 이유는 수지 타산이 안 맞아서. 입장권이 많이 안 팔리니 적자라는 얘기다. 그만큼 국내에서는 F1의 인기가 외국과 같진 않다. 참고로 2014년의 경우 19개국에서 그랑프리가 개최되었고, 영화의 메인이 되는 1976년은 16개국에서 개최되었다.

지급되는 포인트도 규정이 현재와 1976년이 다르다. 현재는 10등까지 포인트를 주는데, 1등부터 25, 18, 15, 12, 10, 8, 6, 4, 2, 1점을 주는 반면, 1976년에는 6등까지 9, 6, 4, 3, 2, 1점을 줬다. 이 점수는 선수에게도 누적되지만 그 선수가 소속된 팀(차 제작사)에도 누적이 된다. 만약 선수가 그 해에 다른 팀으로 이적하게 되면, 선수의 누적 점수는 선수가 가져가고, 팀에 누적된 점수는 팀이 그대로 가진다. 그렇게 해서 모든 그랑프리가 끝났을 때, 누적 점수가 가장 높은 선수와 팀이 그 해의 월드 챔피언이 된다. 즉 챔피언은 선수와 팀 두 개가 존재한다는 것.

그럼 한 팀에 여러 선수를 두면 팀에서 점수를 많이 따지 않겠는가? 그래서 이에 대한 제한도 있다. 한 시즌에는 최대 4명의 선수들을 활용할 수 있고, 한 그랑프리에서는 두 대의 차만 사용 가능하다. 이 말은 곧 한 경기에 두 명의 선수만 출전이 가능하단 얘기가 된다. 결국 좋은 선수를 데리고 있어야 점수를 획득할 수 있다는 얘기. 그래서 <러시: 더 라이벌>에서 맥라렌의 최고 선수 에머슨이 1975년 말에 다른 팀으로 이적하자 그 자리를 제임스 헌트가 지원해서 차지하게 된다. (참고로 에머슨은 1972년, 1974년 월드 챔피언이었으며, 1973년, 1975년은 2위를 기록한 뛰어난 선수다.)


니키 라우다
Niki Lauda



① 천재 레이서

영화에도 잘 드러나듯 니키 라우다는 차에 대해서 포뮬러 정비 엔지니어들보다도 더 뛰어난 지식을 갖고 있을 정도로 차에 대해 해박한 레이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최고의 엔지니어가 최고의 레이서가 될 순 없다. 둘의 영역은 분명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니키 라우다는 둘 다 가능하다는 게 특이하다. 그만큼 그는 차를 위해, 레이싱을 위해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그의 포뮬러 기록이 증명해준다. 게다가 비즈니스 수완도 좋다. 이 정도면 천재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을 듯 싶다.

② 진지한 레이서

그는 경기 전에는 술도 마시지 않는다. 게다가 재미도 없다. 그래서 그런지 영화에서는 팀원이나 레이싱 관계자들과 친하게 지내지 못하고 개인주의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이는 사교적이면서 재밌는 제임스 헌트와는 매우 대조적인 모습이다. 이에 대해서 실제 니키 라우다는 영화에서처럼 그렇게 엄격하진 않지만, 제임스 헌트보다는 더 원칙적인 건 사실이라고 말한다.

③ 별명은 쥐

그의 별명은 쥐다. 영화 속에서도 제임스 헌트가 니키 라우다를 칭할 때 '쥐'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실제로도 그랬다고 한다. 이 별명은 말보로 스폰서가 앞니가 돌출된 모습을 빌어 지어준 별명이다. 참고로 그는 1971년 F1에 참가하였으며, 1973년에 말보로에서 스폰을 받아 브리티시 레이싱 모터스팀에서 활동하다 1974년 페라리와 계약한다.


제임스 헌트
James Hunt



① 본능 레이서

니키 라우다와 대조적으로 제임스 헌트는 본능적인 레이서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노력하지 않은 타고난 레이서라는 건 아니다. Formula Ford에서부터 차곡차곡 커리어를 쌓아 1973년에 F1에 입성하니 말이다. (니키 라우다보다 2년 늦다.) 다만 이렇게 얘기하는 이유는 니키 라우다와 너무 대조적이기 때문이다. 니키 라우다는 위험을 따지면서 레이싱을 하는 반면, 제임스 헌트는 위험을 무릎쓰고 레이싱을 한다. 니키 라우다가 확률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라면, 제임스 헌트는 과감한 베팅을 하는 승부사적 플레이어라 할 수 있겠다.

② 플레이 보이

니키 라우다와 달리 제임스 헌트는 경기 전에도 술을 마신다. 그런 거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타입이다. 게다가 술도 잘 마시고, 농담도 잘 하며, 잘 생기기까지 해서(위의 사진을 보라) 여자들과 잘 어울린다. 그의 말에 따르면 5,000명 정도와 잠자리를 가졌다고 하니 과연 그 말이 사실일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하루에 한 명과 잠자리를 한다고 해도 13.7년이 걸리니 말이다. 그의 레이싱복에 붙은 패치에는 "Sex is a high performance thing"란 문구가 적혀 있을 정도. 영화에서는 "Sex: Breakfast of Champions"란 패치를 붙이는 걸로 나오는데 이 또한 사실이다.

<러시: 더 라이벌>의 마지막에 니키 라우다와 제임스 헌트의 대화 내용이 나오는데, 이 때 제임스 헌트의 대사가 그의 기질을 잘 드러낸다. "인생의 조금은 즐겨도 되겠지? 아무런 즐거움도 없다면, 수백만개의 우승컵, 메달, 비행기들이 무슨 소용있겠어? 그런 우승들이 무슨 소용이야?" 이게 바로 제임스 헌트다. 그러나 그가 인생을 즐기면서 낭비하는 레이서는 아니다. 레이싱에 있어서만큼은 열정적인 레이서였다.


니키 라우다 vs 제임스 헌트
Niki Lauda vs James Hunt



① 이전 기록 비교

니키 라우다는 1971년에 F1 경기에 첫 출전한 반면 제임스 헌트는 1973년 그의 스폰서인 알렉산더 헤스케스가 이끄는 헤스케스 레이싱팀 소속으로 첫 출전한다. 그러다 1975년 재정적인 문제로 팀이 해체되고 방황하던 사이 맥라렌의 간판 레이서인 에머슨 피티발디가 다른 팀으로 이적하면서 그 자리를 차지한다. 이하 세 선수(니키 라우다, 에머슨 피티발디, 제임스 헌트)의 기록 비교다. 보면 알겠지만 니키 라우다야 1975년에 월드 챔피언이 되긴 하지만 에머슨 피티발디는 당대 최고의 레이서였음을 알 수 있다. 제임스 헌트가 비할 바 안 된다는 얘기.

년도니키 라우다에머슨 피티발디제임스 헌트
1973년18위2위8위
1974년4위1위8위
1975년1위2위4위
② 1976년 독일 그랑프리 이전

<러시: 더 라이벌>에서 가장 메인이 되는 해는 1976년이다. 1976년에 니키 라우다가 부상을 입게 되는 경기가 독일 그랑프리이니 그 이전까지 둘의 경기 기록을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괄호 안은 해당 경기 후의 그들의 누적 점수다. 누적 점수가 아닌 탈락이라고 표시되어 있는 건 경기를 마무리하지 못했다는 것이며, 탈락 뒤에 괄호 안에는 왜 경기를 마무리하지 못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간략 내용이다.

그랑프리니키 라우다제임스 헌트
브라질1위 (9점)탈락 (사고)
남아프리카1위 (18점)2위 (6점)
미국(서부)2위 (24점)탈락 (사고)
스페인2위 (30점)1위 (15점)
벨기에1위 (39점)탈락 (기어)
모나코1위 (48점)탈락 (엔진)
스웨덴3위 (52점)5위 (17점)
프랑스탈락 (엔진)1위 (26점)
영국1위 (61점)실격 (이탈)
이 중에 스페인 그랑프리의 경우, 제임스 헌트의 레이싱카인 맥라렌 M23이 F1의 규정보다 너비가 1.8cm 넓다하여 실격 처리되나 나중에 이는 차의 속도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이의를 제기한 맥라렌팀의 손을 들어줘서 1위로 랭크가 된다. 이는 영화 속에서도 나오는 내용이다.

③ 1976년 독일 그랑프리 이후

실제로도 니키 라우다는 우천으로 인해 독일 그랑프리는 취소해야 한다고 회의를 주선하지만 다른 레이서들이 동의하지 않았다. 니키 라우다가 1위기 때문에 여유가 있어서 그렇게 얘기했다기 보다는 독일 그랑프리가 열리는 트랙이 '녹색 지옥'이라 불릴 정도로 레이서들이 많이 죽은 뉘르부르크링 트랙이다 보니 정말 위험해서 그랬던 것인데, 승점을 따야 하는 다른 레이서 입장에서는 그걸 수용하기 힘들었던 것. 결국 니키 라우다는 경기 도중 사고를 당하고, 거의 죽음의 문턱까지 가게 된다. 담당의가 희망을 갖지 마라고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겨우 살아난 그는 폐를 세척하는 쓰라린 고통을 오직 레이싱에 참여해야 한다는 일념만으로 견뎌내다 6주(42일) 뒤인 이탈리아 그랑프리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참고로 사고 당시 불길의 온도가 800도로 많이 소개되고 있던데(한글 공식 예고편에서도 그렇게 소개되고 있다.), 필자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800도는 화씨이고, 섭씨로 따지면 427도 정도 된다. 이하는 독일 그랑프리부터 마지막 그랑프리인 일본 그랑프리 전까지의 기록이다.

그랑프리니키 라우다제임스 헌트
독일탈락 (사고)1위 (35점)
오스트리아불참4위 (38점)
네델란드불참1위 (47점)
이탈리아4위 (64점)탈락 (회전)
캐나다8위 (0점)1위 (56점)
미국
3위 (68점)
1위 (65점)
④ 1976년 일본 그랑프리

1976년의 마지막 그랑프리인 일본 그랑프리. 승점 68점의 니키 라우다와 승점 65점의 제임스 헌트. 이 경기를 어떻게 끝내느냐에 따라 월드 챔피언이 결정되는 중요한 경기다. 당시 비가 너무 많이 내려 경기는 2시간이나 지연되었는데 결국 경기를 하기로 했던 이유는 PPV 시청권 즉 수익 때문이었다. 이미 판매된 PPV를 환불하기에는 너무나 리스크가 컸기 때문. 메이웨어와 파퀴아오전에 대한 콘텐츠를 읽어봤다면 PPV가 무엇인지 또한 어떻게 수익이 나는지에 대해서 이해했으리라 본다. 우리나라에서야 F1이 비인기 경기지만 외국에서는 얘기가 틀리다.


그런데 이 중요한 경기에서 니키 라우다는 두 바퀴를 돌고서 경기를 포기한다. 차에 문제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위험해서다. 혹자는 독일 그랑프리에서 겪었던 사고의 트라우마 때문이겠거니 생각하겠지만, 실제로 그 사고로 인해 그는 눈물길(눈물이 흐르는 길)에 문제가 생겼고, 그로 인해 눈물이 차서 앞을 제대로 보기도 쉽지 않은데 비까지 퍼부어대니 안전하지 못하다고 판단했던 거다. 그는 인터뷰에서 그렇게 포기하는 게 어려운 결정은 아니었다고 한다. 지금 다시 그 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그는 그렇게 결정할 거라고 하면서.

결국 니키 라우다가 포기한 일본 그랑프리에서 제임스 헌트가 우승하기 위해서 필요한 승점은 4점 이상으로 3위까지만 가능하다. 이 때부터는 라이벌 간의 대결 구도가 아니라 제임스 헌트가 해내느냐 마느냐로 관심을 집중시키는데, 타이어 펑크와 기어봉의 탈락 등으로 3위권 진입이 힘들어보이는 와중에 극적으로 해내는 제임스 헌트. 결국 1976년 월드 챔피언을 획득한다. 이후 인터뷰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챔피언이 되기를 원했고, 그럴 자격이 충분히 있었다. 물론 니키도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영광을 그와 함께 나누고 싶다."


니키 라우다 & 제임스 헌트
Niki Lauda vs James Hunt

대조적인 두 레이서지만 공통점도 있다. 그 중에 하나는 레이싱에 대한 열정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미모의 여인들과 교제했다는 점이다. 제임스 헌트야 플레이 보이고 잘 생겼으니까 그럴 수 있다고 해도 설마 니키 라우다가? 영화 속에서는 한 여자를 만나 결혼하고 그녀에게만 충실한 것처럼 나오는데? 아마 다음의 얘기를 보면 생각이 달라질 듯 싶다. 

① 제임스 헌트



그의 첫번째 아내는 영국 모델이자 댄서, 안무가인 수지 밀러(Suzy Miller)로 1974년 10월에 결혼하지만, 1976년 이혼한다. 이는 <러시: 더 라이벌>에서도 나오는데, 수지 밀러가 제임스 헌트와 이혼하기 전에 교제한 상대가 리처드 버튼(Richard Burton)이란 영화배우다. 당대 최고라 불렸던 여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Elizabeth Taylor)의 남편으로도 유명한데,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8번 결혼 경력 중에 2번의 상대가 리처드 버튼이다. 이때 제임스 헌트는 이혼을 조건으로 리처드 버튼에게 1백만 달러를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수지 밀러 이후, 제임스 헌트는 1983년 사라 로맥스(Sarah Lomax)란 여성과 재혼한다. 아들 둘을 낳고 잘 사는가 싶더니 6년 뒤인 1989년에 이혼하는데, 이혼 사유는 제임스 헌트의 간통. 플레이 보이 기질을 버리지 못했던 탓이었다. 이 시기의 제임스 헌트는 그가 레이싱으로 벌었던 대부분의 돈을 비즈니스로 탕진한 상태였다.



그래도 그의 플레이보이적 기질은 녹슬지 않아 사라 로맥스와 이혼한 그 해 겨울에 식당 웨이트리스로 일하고 있던 헬렌 다이슨(Helen Dyson)과 교제하기 시작했는데, 결혼을 하진 않는다. 헬렌 다이슨의 나이가 제임스 헌트보다 18살이나 어려 그녀의 부모가 반대할 걸 염려해서 친구들에게도 둘의 교제를 비밀로 했었다. 그렇게 몇년을 교제하다 나중에는 제임스 헌트가 프로포즈를 하는데, 프로포즈한 다음날인 1993년 6월 15일 윔블던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그 때 그의 나이 불과 45세였다.

② 니키 라우다



니키 라우다는 1976년 마를린 로스(Marlene Knaus)와 결혼하여 두 명의 아들을 낳는다. 제임스 헌트에 비하면 다소 못생긴 그지만 부인은 예쁘다. 니키 라우다가 화상을 입어 보기 흉한 외모가 되었을 때도 곁을 지켜주고 있던 마를린 로스. 평생을 그렇게 살 듯 싶었는데 둘은 1991년 이혼한다. 이혼 사유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1979년 그가 첫 번째 은퇴 후에 설립한 라우다 에어의 보잉 767기가 1991년 태국에서 추락하여 223명이 사망한 사고가 발생하는데, 이로 인한 여러 문제들로 인한 가정 불화가 원인이 아닌가 싶다.(이건 지극히 필자 개인 추측이다.)



마를린 로스와의 결별 이후 결혼하지 않고 얻은 아들이 하나 있는데, 상대가 누군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다 2008년에 이르러 두 번째 결혼을 하게 되는데, 상대는 그가 소유한 항공사의 직원이었던 Birgit Wetzinger다. 그런데 나이 차이가 무려 30살이라고. 그녀는 니키 라우다에게 이식에 필요한 신장을 제공하기도 했는데, 둘 사이에는 쌍둥이 아들, 딸이 있다. 현재까지 둘 사이에는 문제가 없으며, 니키 라우다는 아직 살아있다. 그는 영화 <러시: 더 라이벌> 제작에도 많은 도움을 준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자신의 역을 맡은 다니엘 브륄에게.


영화 vs 실화
Movie vs Real

① 실화에 충실

영화 vs 실화 코너를 맡아 앞으로도 많은 영화들을 소개하겠지만, <러시: 더 라이벌>과 같이 실화에 충실한 영화는 생각보다 흔하지 않다. 그만큼 실제가 영화와 같이 드라마틱했기에, 각색의 필요성이 없다는 말로 바뀔 수도 있을 것 같다. 니키 라우다의 실제 사고 장면은 당시 중계된 화면을 보면 알겠지만 영화에서 그대로 재연했고, 이를 위해 사고가 났던 뉘르부르크링 트랙 그 자리에서 촬영했다. 또한 1976년 영국 그랑프리에서 1위(후에 실격 처리되었지만)한 제임스 헌트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우승하게 된 이유를 이렇게 얘기한다. "Big Balls"(큰 불알). 이 또한 실제 인터뷰를 바탕으로 했다. 

② 당시의 차량

영화에 등장하는 F1 레이싱카도 1976년 당시에 사용하던 것을 구했다고 한다. 니키 라우다가 1976년 시즌에 사용했던 페라리, 제임스 헌트의 맥라렌 이외의 레이싱카의 경우에는 수집가들이 보관하고 있던 걸 동원하여 찍었다고 전해진다. 그만큼 론 하워드 감독은 실화에 충실한 영화를 만들려고 했던 듯하다. 

 높은 싱크로율


왼쪽이 다니엘 브륄, 오른쪽이 니키 라우다

론 하워드 감독의 노력은 캐스팅에서도 엿볼 수 있다. 실존 인물들과 싱크로율이 매우 흡사한 배우들만 캐스팅했는데, 가장 눈에 띄는 건 앞니가 돌출된 니키 라우다였다. 니키 라우다 역은 다니엘 브륄이란 배우가 맡았는데, 비록 분장을 하긴 했지만 당시의 니키 라우다와 싱크로율이 매우 높음을 알 수 있다. <러시: 더 라이벌>의 모든 면면들이 실제인가?라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할 순 없지만(예를 들어 영화 초반 간호사와의 교제, 스튜어디스와의 정사 등) 핵심 스토리라인은 실화에 충실했다는 얘기는 할 수 있을 듯하다.


영화 그 이후
After Movie

① 레이싱 기록

<러시: 더 라이벌> 마지막 장면에서 니키 라우다와 제임스 헌트는 다음 시즌을 기약하면서 헤어지는데 다음 시즌이라 함은 1977년을 말한다. 1977년 이후부터 둘의 레이싱 기록은 다음과 같다.

년도니키 라우다제임스 헌트
1977년1위5위
1978년4위13위
1979년14위, 은퇴시즌 중 은퇴
1982년복귀, 5위
1983년10위
1984년1위
1985년10위, 은퇴
1977년에는 니키 라우다가 월드 챔피언이 된다. 그 해 제임스 헌트는 5위라는 기록에 그치고 마는데, 이는 레이싱카 문제(이건 1976년 초반 경기에서도 많았던 문제로 영화에서도 잘 나온다.)와 팀내의 불협화음이 컸다고 한다. 이 문제는 그 다음 해에도 이어져 1978년 13위를 기록하고 결국 팀을 이적하고 마는데 당시 제임스 헌트는 페라리로 이적하고 싶었지만, 올림푸스가 스폰하는 울프 레이싱팀으로 이적하게 된다. 그러나 이적한 팀에서도 레이싱카 문제 때문에 결국 시즌 중에 은퇴하고 만다. 이 때문이었을까? 1978년 4위를 기록한 니키 라우다마저 1979년 14위를 기록하고 은퇴한다.

그러나 3년 뒤인 1982년, 니키 라우다는 F1에 복귀하여 1984년 월드 챔피언을 차지하게 된다. 비록 1984년에는 제임스 헌트와 같은 숙명의 라이벌이 없었지만 그의 레이싱 실력만큼은 녹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한 셈이다. 이후 1985년 그는 두 번째 은퇴를 하게 된다. 통산 기록으로 따지면 니키 라우다는 3번의 월드 챔피언을 지내 제임스 헌트보다는 기록면에서 훨씬 더 낫다. 이걸 보면, F1의 전설이라 불리는 미하엘 슈마허의 7번 월드 챔피언 기록이 얼마나 대단한 기록인지를 잘 알 수 있을 듯. 필자는 F1에는 관심이 별로 없었지만 고소득 스포츠 스타 1위에 미하엘 슈마허가 오르면서 알게 되었다. 지금은 당연히 메이웨더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② 레이싱 이외

제임스 헌트는 은퇴 후 BBC 해설가로 잠깐 활동하고, 방송인으로도 활동했다. 안타까운 건 너무 이른 나이에 죽는다는 점. 반면 비즈니스 수완이 좋았던 니키 라우다는 자신의 항공사 라우다 에어를 설립하여 후에 회사를 팔고, 다시 새 항공사를 설립하기도 한다. 그는 비행 자격증을 획득하기도 했고, F1 레이싱팀의 감독, 호주와 독일 그랑프리 해설자, 작가(5권의 책 집필), 페라리팀 컨설턴트 등의 다양한 직업을 거쳐 2013년 메르세데스 F1팀 회장 역할을 맡는다. 이런 걸 보면 둘은 레이싱 이외의 실제 삶에서도 레이싱에서 보여줬던 면모를 보여줬다.


기타
Etc

① 동의할 수 없는 대사

영화 초반 F3 경기를 앞두고 팀 오너(알렉산더 헤스케스)가 이런 얘기를 한다. "Men love women, but even more than that, men love cars"(남자는 여자를 사랑한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차를 사랑한다.) 필자도 남자기에 차를 좋아한다. 여자들이 가방을 좋아하는 것처럼. 그러나 차보단 여자가 더 좋다. 이 말에는 절대적으로 동의할 수가 없다! :P

② 멋진 대사

"어리석은 자는 친구로부터 얻지만, 현명한 자는 자신의 적들로부터 더 많은 것을 얻는다." 라이벌이자 친구였던 둘. 매사 진중했던 니키 라우다가 제임스 헌트에게 영화 속 마지막에 한 말이다. (물론 비슷한 말들이 많이 있긴 하지만) 삶의 지향점은 달랐지만 레이싱이란 테두리에서는 최고가 되길 바랬던 둘 사이의 궤적을 생각하니 이 대사의 의미가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러셀 크로우

론 하워드 감독은 리처드 버튼 역(제임스 헌트의 첫 번째 부인인 수지 밀러의 연인)으로 러셀 크로우를 캐스팅하려고 했었다고 한다. 물론 실제 캐스팅으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 * *

지금까지 필자가 쓴 영화 vs 실화 중에서 가장 많은 노력을 들인 글이 아닌가 한다. 그만큼 <러시: 더 라이벌>은 필자에겐 가슴 뛰는 영화로 기억되어 많은 얘기를 하고 싶었다. 뛰어난 레이싱 실력에 목숨까지 거는 배짱의 플레이보이 제임스 헌트와 레이싱과 카 조립에서도 뛰어난 천재지만 리스크를 따지는 니키 라우다. 둘은 극과 극의 대조를 보이는 라이벌이지만 같은 목표를 두고서 실상은 서로를 끌어당기고 있다. 니키 라우다가 있었기에 제임스 헌트가 우승할 수 있었고, 제임스 헌트가 있었기에 사경을 헤매다가 레이싱에 복귀할 수 있었던 니키 라우다. 당시에는 라이벌로 경쟁하겠지만 지나고 보면 이런 라이벌이 있었다는 것 그 자체가 행복이 아닐까 싶다.

More powerful, even the fear of a death itself, is the will to win.
죽음에 대한 두려움, 그 자체보다도 강한 건, 우승에 대한 의지다.


예고편
Trai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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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확률을 계산하지만, 승부사는 천재의 판단을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