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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vs 실화 #8. 연평해전 - 묻혀서는 안 될 일을 드러내준 영화



필자는 한국 영화는 잘 보지 않는 편이다. 그러나 개봉한 주의 주말이 지나서 반응이 좋다거나, 네티즌 평점이 8점 이상(1,000명 이상이 평점을 냈을 때)이면 분명 무슨 이유가 있다고 보고 영화관을 찾는다. <연평해전>은 위의 두 가지 조건을 둘 다 충족했던 영화였다. 실화를 기반으로 했다는 얘기만 듣고 봤는데, 역시 아무리 재밌는 영화라고 하더라도 관객을 울릴 수 있는 영화에 비할 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그 울음이 그냥 쥐어짜는 울음이 아니라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참아도 참아도 참기 힘든 울음이라면...

그러나 <연평해전>을 개봉작 리뷰라는 코너로 소개하지 않는 이유는 영화에 대한 감흥 그 자체보다는 제2연평해전 그 자체와 함께 그런 일이 일어난 배경에 대해서 짚어봐야(전후관계를 따져봐야) 이를 좀 더 객관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자칫 이번 <연평해전>의 흥행으로 인해 감독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정치적으로 활용될 소지가 다분히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 vs 실화 코너로 <연평해전>을 소개한다. 그리고 <연평해전>은 영화로는 어떻다는 관점에서는 얘기할 거리가 못 된다. 그게 핵심은 아니니까.


월드컵에 묻힌 제2연평해전
Second Yeonpyeong Naval Battle is covered with World Cup



2002년 대한민국을 들썩하게 했던 일이라고 한다면 바로 한일 월드컵이다. 필자 또한 당시 월드컵 응원을 하면서 보냈던 때가 생각난다. 그런데 월드컵은 알았어도 연평해전은 필자 또한 몰랐다. 이런 의미에서 <연평해전>은 필자에겐 잊혀져선 안 될 일을 다시 상기시켜준 영화라고 하기 보다는 묻혀서는 안 될 일을 드러내준 영화라고 하고 싶다. 그래서 고맙다. 영화 제목은 <연평해전>이지만 실제로는 제2연평해전이고 원래는 서해교전이었다가 2008년 4월 제2연평해전으로 격상되었다.


교전 vs 해전
Engagement vs Naval Battle

원래 서해교전이었던 걸 제2연평해전으로 격상시켰다고 하면 교전보다는 해전이 좀 더 레벨이 높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연평해전> 속에서도 등장하는 '교전 규칙'을 영어로 하면 'Rules of Engagement'라고 하기에 소제목에서 교전은 Engagement라고 표기했으나, 실상 교전의 의미는 전투 그 자체를 의미한다. 그것이 육지든, 바다든, 하늘이든. 반명 해전은 영어로 'Naval Battle'이라 표기하므로 그렇게 표기했지만, 전투 관련 영문들을 보면 꼭 해전을 Naval Battle이라고만 표기하지는 않는다.

보통 영문의 경우에는 같은 표현이라고 하더라도 동일 단어를 반복해서 사용하지 않는 게 세련된 문장인지라 해전을 표기할 때, Naval Battle, Naval Engagement, Naval Combat로 혼용해서 표기하는 듯.(필자가 틀렸다면 지적바란다.) 그래도 가장 많이 쓰는 표현은 Naval Battle이다. 그래서 단어 자체의 의미가 달라서 격상되었다는 걸 말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 그런데 왜 명칭을 바꾸면서 격상이라고 하는 것일까?


햇볕정책
Sunshine Policy

<연평해전>의 실화인 제2연평해전과 더불어 제1연평해전 또한 김대중 정권 시절에 일어난 일이다. 당시 김대중 정부의 대북 정책은 햇볕정책으로 가시적인 성과도 분명 있었지만, 실패했다는 목소리도 높은 정책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할 건, 햇볕정책의 3원칙 중 첫 번째 원칙이 "북한의 무력 도발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력 도발은 지속적으로 일어났고, 그 중에 제1연평해전과 제2연평해전이 있었다. 그리고 이런 일을 겪고 난 다음의 정부의 태도에는 분명 문제가 있었다.

당시 세계 3대 스포츠 이벤트 중에 하나인 월드컵이 한창이었기에, 제2연평해전이 알려지는 게 좋을 리 만무했다. 전세계가 집중하고 있는 마당에 우리나라에서 전투가 벌어졌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 우리나라 이미지에 결코 좋을 일 없다. 이런 부분은 이해가 가는 게, 아시아권이 아닌 유럽이나 미주의 외국인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너네 나라 괜찮냐?"는 소리를 이따금씩 듣는다.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니까 언제 전쟁이 터질 지 모르니 위험하지 않냐는 얘기다. 우리나라를 잘 모르는 외국인들은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니 가뜩이나 이목을 받고 있는 와중에 그런 얘기가 나오는 게 좋지 않은 건 당연하다. 이런 부분은 충분히 이해가 가는 부분이지만, 원칙을 어긴 북한임에도 햇볕정책에 변화를 주지 않는 건 좀 이해가 안 가는 면이 있다. (<연평해전>에서도 부상자들이 국군수도병원에 실려갔을 때, TV에서 금강산 관광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게다가 당시에는 서해교전이라 명명하여 마치 우리가 패전한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우리 배는 침몰했으나 북한 배는 침몰하지 않았기 때문. 그러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제2연평해전으로 명칭이 바뀌고 승리한 해전으로 격상된다. 비록 배는 침몰했지만 사상자 규모가 북측이 더 컸기 때문. 필자의 정치적 입장을 떠나 비판해야할 부분은 비판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반대로 어느 특정한 일을 잘 했다고 해서 그게 다른 많은 잘못을 덮지는 못한다.


제2연평해전의 원인
Cause of Second Yeonpyeong Naval Battle

① 서해 NLL 지역은 꽃게 어장

서해 NLL 지역은 6월이 되면 꽃게 어장이 형성된다. 먹고 살기 힘든 북한 어민들은 이 꽃게 어장에서 꽃게를 잡기 위해 NLL을 넘어오곤 하는데, 북한 해군은 어민들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함께 내려오곤 했다. 이 때문에 서해 NLL 지역은 6월이 되면 북한과 잦은 충돌이 잦았고 이를 증명하듯, 제1연평해전은 1999년 6월 15일, 제2연평해전은 2002년 6월 29일에 벌어졌다. <연평해전>에서 한상국 조타장(진구 분)이 박동혁 의무병(이현우 분)을 불러 먹으라고 한 라면이 바로 꽃게 라면이라는 걸 떠올려보라. 

② 제1연평해전의 교전 규칙과 원인

경고방송  시위기동 → 차단기동 → 경고사격 → 격파사격
여기서 시위기동이라 함은 목표 배와 안전거리를 유지하면서 근거리까지 접근하여 움직이면서 대처하는 걸 말하고, 차단기동은 목표 배의 진행방향과 수직으로 진행하여 직접적으로 진행을 저지하도록 움직이는 걸 말한다. 이 교전 규칙은 UN에서 만든 것으로 1997년 김영삼 정부 때 국내에 도입이 되었다. 제1연평해전 당시는 1999년으로 김대중 정부가 햇볕정책을 펼치던 때라, 차단기동이 이렇지는 않았고, 일명 밀어내기 식 그러니까 배로 부딪혀서 쫓아보내는 방식을 주로 사용했다.

이런 밀어내기 식 차단기동이 효과적이었던 이유는 북한의 배는 낙후되어 있어 부딪히기만 해도 파손되기 십상이었기 때문. 햇볕정책을 펼치던 김대중 정부에서는 사격을 하지 않아도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었기에 이를 적극 활용했던 거다. 그러다 이에 열받은 북한이 사격을 감행하는데, 이에 남한이 응수하면서 벌어진 게 제1연평해전이었다. 결과는 상대가 안 되었다. 14분 교전 동안 남한 측 피해는 선체의 일부 파손과 7명 부상에 그친 데에 반해, 북한은 어뢰정 1척 침몰, 경비정 1척 반파, 경비정 4척이 파손되었으며 사망자만 최소 20여명으로 추정한다.

③ 제2연평해전의 교전 수칙과 원인

둘째, 우리가 먼저 발사하지 말라
셋째, 상대가 발사하면 교전 수칙에 따라 격퇴하라.
제1연평해전 이후, 김대중 정부는 4대 교전 수칙을 만든다. 햇볕정책을 피던 당시라 우리가 먼저 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았던 뜻은 이해하나, 계속해서 먼저 도발하는 북한을 무조건적으로 포용하려는 정책은 좀 이해가 안 간다. 여튼 교전 규칙은 제1연평해전과 같았다. 다만 4대 교전 수칙이 추가되었는데, 이 중 둘째와 셋째 수칙의 위의 수칙이다. 교전 규칙에 의하면 차단기동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말을 듣지 않으면 경고사격이 가능하지만 4대 교전 수칙에 따르면 경고사격이라 할 지라도 할 수가 없는 거였다.

<연평해전>에서 윤영하 정장(김무열 분)이 회의 도중에 교전 수칙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경고사격으로 바로 넘어가야 한다고 얘기하지만 232 편대장(이철민 분)의 저지로 얼렁뚱땅 넘어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게 이 말이다. 밀어내기 식의 차단기동 시, 북한 경비정과 가까워지면 우리가 위험하다는 얘기. 그리고 제2연평대전은 바로 그 문제로 인해 기습 공격을 받고 피해가 커졌던 거다.

제1연평해전이 있은 후, 북한은 나름 벼르고 있었다. 복수를 하고 싶었던 것. 그래서 나름 준비를 했다. 자기네들의 경비정 화력을 보강하기 위해 경비정에다가 탱크의 포탑을 설치하여 개조한 것. <연평해전>에서 보면 북한 경비정에 탱크 포탑이 설치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기회를 노렸다. 그래서 몇 번 남한의 경비정을 탐색하기도 한다. 이 또한 <연평해전> 영화 속에 잘 나오는 부분이다. 그리고 2002년 6월 29일 한일월드컵 3・4위전인 한국 대 터키 전이 열리던 날, 제2연평해전이 일어난다.


전사자들
Persons killed in battle

① 교전 당시 사망자 4명



2009년 6월 29일 오전 10시 25분, 북한 경비정 등산곳 684호에 설치된 탱크 포탑에서 발포한 포탄이 조타실에 명중하면서 제1연평해전이 벌어진다. 차단기동을 하던 당시 참수리 357호는 북한 경비정과 450m 정도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이 한 발의 피해가 컸다. 아무리 남한 측의 화력이 쎄다고 하더라도 참수리 357호의 화력으로는 북한 경비정을 침몰시키기에는 무리가 있었던 반면, 북한 경비정은 탱크의 포탑을 설치하여 참수리 357호를 침몰시킬 수 있을 정도의 화력이었던 것. 교전으로 사망한 이들은 다음과 같다.

윤영하 소령 (당시 대위, 정장) - 김무열 분(북한의 85mm 포탄에 조타실 피격으로 전사)
조천형 중사 (당시 하사, 병기사) - 김지훈 분(후미 22포 20mm 발칸포 사수, 작동 불능 상태의 발칸포로 응사하려다 방아쇠 부여잡고 전사)
황도현 중사 (당시 하사, 병기사) - 장준학 분(21포 20mm 발칸포 사수, 작동 불능 상태의 발칸포 작동시키다가 방아쇠 부여잡고 전사)
서후원 중사 (당시 하사, 기관실 내연사) - 주희중 분(7.62mm M60로 응전사격 중 전사)
② 실종자 한상국 조타장 사망



교전 후 실종자는 1명이다. 바로 한상국 조타장(진구 분). <연평해전>에서도 참수리 357호 침몰 후에 SSU 대원들이 조타실에서 발견하는데, 실제로도 그랬다. 다만 <연평해전> 속에서는 끈으로 조타 키에 자신의 팔을 묶었는데, 실제로는 팔을 묶지는 않았고, 조타 키를 손에서 놓지 않은 모습으로 발견되었다고. 참수리 357호 침몰 후 53일 만에 발견했다. 

③ 84일 투병 후에 사망한 의무병 박동혁



의무병 박동혁(이현우 분)은 100발 이상의 총탄에 피격돼 중상을 입고 국군수도병원으로 옮겨져 84일을 투병하다 끝내 사망한다. 당시 국군수도병원에서 근무했던 이봉기 의사의 수필에서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파편이 뼈를 뚫고 들어가 장을 찢었고, 등의 근육과 척추에도 박혀 있었으며, 등과 옆구리는 3도 화상이, 전신에 총상과 파편이 즐비했다.'


제2연평해전 영향
Effect of Second Yeonpyeong Naval Battle

① 5단계 교전 수칙, 3단계로

경고방송・시위기동 경고사격 → 격파사격
제2연평해전에서 문제가 되었던 차단기동 단계가 생략되는 걸 골자로 하여 2004년 개편되었다. 안전거리를 유지하여 기동하면서(시위기동) 경고방송을 하고, 그래도 무시하면 차단기동 없이 바로 경고사격을 하는 것으로 기존 5단계에서 3단계로 줄어들었다. 이로 인해 2009년 대청해전에서는 우리 측 경고사격에 조준사격을 가해 온 북한을 상대로 불과 3-4분여 만에 무력화시킨다.

② 고속정 초계함 사정거리 내에서

참수리는 고속정으로 전투함 중에서 가장 작은 전투함이다. 이보다 조금 더 큰 게 고속함이고, 고속함보다 더 큰 게 초계함인데, 제2연평대전 발생 당시 기습 공격을 받은 걸 알고 초계함이 출동하여 지원 사격을 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이로 인해 피해가 컸기에 이후 고속정은 초계함의 사정거리 내에서 3단계 교전 수칙을 시행하도록 변경되었다.

③ 고속정 화력 보강



기존 참수리 고속정은 170톤이었던데 반해 차기 고속정은 570톤으로 고속정이 아닌 고속함이었다. 길이도 참수리 고속정의 37m에 에 비해 훨씬 긴 63m에 달했으며, 가장 약한 화력의 7.62mm M60 기관총은 12.7mm K6 기관총으로 대체했고, 가장 강한 화력의 40mm 기관포는 1000톤이 넘는 전투함에 탑재하는 함포인 76mm로 교체했다. 게다가 최대 사거리 150km의 해성 미사일도 장착했다. 이렇게 기존 참수리 고속정을 대체한 차기고속함 1번함을 윤영하함(PKG-711)이라고 하여 2007년 6월 28일에 진수한다.

이후 2009년 9월 23일 STX조선해양에서 2번함 한상국함(PKG-712), 3번함 조천형함(PKG-713)을, 같은 해 12월 11일에 4번함 황도현함(PKG-715), 5번함 서후원함(PKG-716)을, 2010년 7월 28일에 한진중공업에서 6번함 박동혁함(PKG-717)을 진수시켜 제2연평해전의 전사자 6명의 이름을 딴 고속함을 내놓는다. 이후 이 규격으로 만들어진 고속함을 윤영하급 미사일 고속함이라고 부른다. 여기서는 이러한 명칭들에 대한 규칙은 따로 설명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서는 만재배수량을 기준으로 나눈 군함과 명칭 및 번호 규칙 글을 참조하기 바란다.


보상
Compensation

제2연평해전 전사자들은 당시의 군인연금법으로는 순직과 전사의 구분이 없어 모두 순직(공무 중 사망)으로 처리되어, 본인이 받았던 월급의 36배에 해당하는 공무상 사망자 사망보상금을 일시불로 지급받는다. 계급에 따라 다르지만 3,100-8,100만원 정도 된다. 그 외에 38-86만원의 유족연금과 61-62만원의 보훈연금을 받게 된다. 이렇게 명백히 전사임에도 불구하고 순직과 전사의 구분이 없어 순직으로만 처리되어야 하는 문제는 2004년 노무현 정부 때 개정하여 가능해지지만 그 이전에 벌어진 제2연평해전에는 소급 적용되지 않는다. 

이는 형평성 논란 때문이다. 기존까지 소급 적용을 시키면, 제2연평해전 전사자만 전사자냐? 우리는 전사자 아니냐? 뭐 그런 얘기들이 나올 수 밖에 없고, 어느 시점까지 소급 적용을 시킬 것이냐의 문제도 있다. 그래서 소급 적용하지 않았던 것인데, 최근에는 <연평해전>이 대박 흥행을 이어나갈 기세다 보니 특별법을 제정하여 처리하잔 얘기까지 나오는 거다. 역시 영화 한 편의 힘이 크다. 그렇게 되면 현행 군인연금법 상, 공무원 전체의 소득월액 평균액의 57배 상당액의 사망보상금을 받게 된다.


영화 vs 실화
Movie vs Real

① 의무병 박동혁 모친



<연평해전>에서 의무병 박동혁(이현우 분)의 모친(김희정 분)은 언어 장애인으로 나온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장애인이 아니란 얘기. 게다가 음식점에서 일을 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간호조무사였다. 의무병 박동혁의 아버지는 건설업에 종사하셨고. 아래 <그 날>이란 12분 30초 정도의 다큐멘터리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다큐 속에는 실제 의무병 박동혁의 치료 장면이 나오는데, 등 아래쪽의 피부가 아예 없다는 걸 살짝 볼 수 있다.



② 허구의 인물 두 명

당시 상병이었던 의무병 박동혁을 갈구던 고참 이병장(한성용 분)은 실존 인물이 아닌 허구의 인물이다. 또한 윤영하 점장의 해군사관학교 동기로 나오던 참수리 358호 정장(이청아 분)은 여자가 아닌 남자였다. 즉 여자 정장은 허구.


기타
Etc

 실제 해군 출신 배우 진구

<연평해군>에서 조타장 역을 맡은 배우 진구는 실제 해군 출신이며, 연평해전이 일어나기 일주일 전에 전역했다.

 실제 전투 시간 = 영화 속 전투 시간

2009년 6월 29일 10시 25분 북한의 기습 공격으로 시작된 제2연평해전은 10시 56분에 전투가 종료되어 총 31분 동안 교전한다. <연평해전>에서도 교전 시간이 30분 정도 되는데 이는 의도한 게 아니라 실제 교전처럼 그리기 위해서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라고.

③ 제작 기간 7년

제작비가 없어 해군동지회, 현역 해군들의 성금을 모아 제작에 착수하였으나 제작비가 떨어져 촬영을 중단하기도 하고, 그 사이에 배급사가 바뀌고 출연 배우들이 바뀌기도 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이 때 윤영하 소령 역이 정석원(백지영 남편)에서 김무열로 바뀐다. 이후 3차에 걸친 크라우드 펀딩으로 7천여명으로부터 투자금을 받아 완성하는데, 크라우드 펀딩 참여자 이름까지도 다 올라가는 엔딩 크레딧만 12분 걸린다고.

 참수리 357호

용산 전쟁기념관에 실물크기의 모형이 전시되어 있으며, 실제 참수리 357호는 평택 2함대사령부에 전시되어 있다. 평택 2함대사령부는 견학 신청 절차를 거치면 누구나 다 견학할 수 있다. → 견학 신청 페이지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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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풍림화산 프로필 사진
    풍림화산 풍림화산 프로필 풍림화산 블로그 풍림화산 유투브   2015-12-06 20:41:27
    KS Hwang   감사합니다. ^^

  • KS Hwang 프로필 사진
    KS Hwang KS Hwang 프로필   2015-12-02 16:26:50
    좋은 글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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