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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vs 실화 #9. 극비수사 - 부산 어린이 유괴사건의 전말



2015년 곽경택 감독의 <극비수사>는 1979년 부산에서 일어난 '정효주 유괴 사건'을 바탕으로 개봉 전부터 주목을 받았다. '정효주 유괴 사건'은 부산 사람이라면 다 알 정도로 유명한 사건이지만 <극비수사>를 통해 처음 접하는 이들도 많아 영화를 보고 나면 그 내막이 궁금해지기 마련일 터. 이에 실제 인물들과 1, 2차 유괴 사건(영화에서는 1차 유괴 사건을 다뤘다.)에 대한 전말을 살펴보도록 한다. 

다만 실제 피해자가 아직까지 생존해 있다는 점에서 어쩌면 영화 vs 실화를 다루는 것이 결국 피해자들이 원치 않는 이야기를 들추는 게 아닌가 싶어 여기서는 최대한 과거의 신문 자료들을 토대로 객관적 사실을 전달하고 흥미가 아닌 경각심에 무게를 두었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니 아무리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하더라도 영화의 내용이 전부 실제라고 믿으면 곤란한 법이다.

*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피해 가족들
Family Members



정효주 양의 아버지 정연O 씨는 문창수산의 대표로, 영화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수산물 판매로 부를 쌓은 이였다. 따라서 정연O 씨가 극 중에서 공길용 형사와 기타 경찰들에게 현금을 건네는 것은 개연성이 없는 얘기는 아니나 이에 대해서는 정확히 드러난 바가 없어 각색일 가능성이 높다. 다만, 영화 후반부에 정연O 씨가 경찰에 5천만원을 기탁한 것으로 나오는데, 실제로는 2배인 1억원을 기부했다. 지금에야 1억이라는 돈이 크게 보이지 않을 지 몰라도 그 때는 1970년대 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큰 금액이다.

<극비수사>는 공길용 형사와 김중산 도사라는 실제 인물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다 썼지만 피해자들의 이름은 극중에서는 다르게 설정했다. 이유는 분명하다. 피해자들에게는 이 사건을 다시 떠올리기가 싫었을테고, 이 사건으로 인해 본인의 이름이 거론되는 게 꺼려졌을 터. 실제로도 유괴된 정효주 양의 어머니는 이 사건이 영화화되는 것을 반대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극 중 가족들은 실제 이미지와는 다르게 많이 각색되었는데, 오히려 이로 인해 영화 개봉 후 각종 추측성 루머가 정효주 양의 어머니를 더 힘들게 했다. 이에 영화에 대한 소송까지 고려 중이라니 가족들에 대한 얘기는 이 정도 선에서 마무리하는 걸로.


등장인물
Character

① 공길용 형사



공길용 형사는 부산대학교 출신으로 1967년에 순경을 시작으로, 1971년 부산 송미장 여관 암달러상 살해범을 검거하여 경장으로 특진, 부산 미국 문화원 방화 사건 해결에 활약하면서 경감까지 진급한다. 영화 후반부에 나왔듯, '쌍칼을 쥔 손금'이라고 했던 김중산 도사의 말처럼, 공길용 형사는 말년에 경무관으로 명예퇴직을 하라던 권유를 미루고 총경으로 2002년 정년퇴직을 한다. 또한 김중산 도사가 "입에 동전 세 개를 떡하니 물고 있으니 돈 걱정은 없다."라고 했는데, 끼워 맞추는 일일런지는 몰라도 현재 공길용 형사는 연금 300만원을 받으며 제주에서 거주 중이다.

또한 군무 이탈자 일제 검거 기간 동안에는 혼자서 20명을 검거하여 육군 모부대장의 표창까지 받는 등, 화려한 커리어를 지닌 형사로 유명했다. 말년에 관할서의 후배들이 훔친 주민증으로 매춘업을 해서 계고 조치가 내려진 것 외에 큰 흠집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밖에 영화와 다른 점이라면 공길용 형사와 피해자들의 만남이다. 실제로는 공길용이 정효주양의 삼촌이 하던 양과자점에 찾아 온 깡패들을 내쫓은 적이 있었는데, 이를 계기로 정효주양의 삼촌이 공길용 형사를 추천한 것. 물론 김중산 도사의 "정효주양에 金, 土가 많으니 이를 채울 공길용 형사의 사주여야 잡을 수 있다."라고 한 것은 사실이다.

② 김중산 도사



실제로 부산에 있는 유명한 역술가. 불가에 몸을 담은 적이 있고 성철 스님과 함께 한 적이 있다는 설정도 사실이며, 많은 역술가들이 정효주양의 생존을 부정적으로 여겼을 때 김중산 도사만이 생존을 긍정적으로 해석했다. 또한 극비로 가자고 했던 것도 역시 김중산 도사의 제안이었고, 정효영양의 아버지가 어류를 포획하는 직업을 삼고 있으니 방생을 해야한다고 한 것도 사실이다. 다만 극의 후반부에 공길용 형사와 김중산 도사의 공이 가려지는 스토리는 영화가 담고자 했던 '소신'이라는 메세지를 전하기 위해서 각색. 즉, 공길용 형사가 받은 정치적 외압과 김중산 도사가 받은 배신은 각색일 가능성이 크다.

영화 속 김중산 도사의 스승은 가상인물이며, 실제 김중산 도사의 스승은 제산 박재현으로 이병철 회장 및 여타의 기업인과 정치인들이 두루 찾는 역술가였다고 한다. 이병철 회장이 삼성 경영에 대한 방향을 결정할 때 제산 박재현 선생으로부터 역술적 조언을 얻기도 했고, 포항제철의 부지 역시 박재현 선생이 점지했다고 한다. 현재 제산 박재현 선생은 2000년에 작고한 상태다. 


1차 유괴
First Kidnapping



① 사건 전말 

1978년 9월 15일 12시 20분경에 발생한 사건. 범인 매석환은 부산 남성국민학교에 부잣집 자녀들이 많다는 소리를 듣고 범행을 계획한다. 부산 남성국민학교 2학년 3반에 재학중이던 정효주 양은 친구 성바룬 양과 함께 하교하던 중, 매석환이 트렁크 뒷쪽 열쇠를 빼달라는 요구를 들어주게 된다. 정효주 양이 키를 뽑아주자 고맙다며 매석환은 두 어린이를 집에다 태워주기로 했고, 먼저 내린 성바룬 양은 무사히 집에 들어갔지만 정효주 양은 유괴를 당한다. 

한편 이 때 쓰인 매석환의 차량은 영화에선 그라나다라고 나왔지만 실제로는 뉴 코티나였다. 아마도 뉴 코티나를 구하지 못한(현재 국내에 1-2대 밖에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제작 사정상 바뀐 것으로 보인다. 또한 실제 번호판은 서울 1라 2082였지만 영화에서는 서울 3가 2801로 쓰였으며 성바룬 양에게 번호판을 기억하게 하는 최면 수사 역시 실제로 행해졌던 방법으로, 실존 인물인 류한평 박사가 실행했다. 영화에서 마찬가지로 차량 번호판 앞 두 자리를 최면 수사 방법으로 파악해내며 사건의 실마리를 제공했다.

정효주 양은 그렇게 매석환의 뉴 코티나 트렁크에 실려 이리저리 끌려다니다가 33일만에 검거되었다. 매석환은 20차례 이상을 전화를 걸며 계속해서 접선 장소를 바꿨는데, 이후 진술에 따르면 그는 당시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정효주 양의 친척 같아 보였고 경찰 같아 보였다며 상당히 불안에 떨었다고 한다. 결국 1978년 10월 18일 10시 30분 쯤, 유리공장 입구 골목길에서 5천만원을 받으러 나타난 매석환은 검거되었다. 

이를 검거한 공길용 형사는 영화에서처럼 자동차에 치이진 않았지만 영화와 비슷하게 자전거를 타고 앞에서 쓰러져 차를 멈춰 세운 뒤 검거했다. 검거 당시 정효주 양은 만화책방에서 만화책을 보고 있었다. 매석환은 정효주 양에게 "아버지 친군데 아버지가 빚을 져서 보살펴야 한다."며 옷도 사주고 먹을 것도 사주며 잘해줬고, 때문에 정효주 양은 매석환이 검거되자 "왜 아저씨를 잡아가려고 하느냐"며 말렸다고 한다.

② 범인: 매석환 

매석환은 검거 당시 39세의 전과 9범의 무직자였으며, 그 9범의 전과 기록에는 유괴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일찍이 26세이던 1960년에는 경무대 경호 책임자였던 곽영주의 아들 곽승근 군을 유괴하여 검거된 기록이 있으며, 또한 1964년에는 위조 지폐를 만들어 붙잡혔다가 탈주한 적도 있다. 매석환은 이 사건으로 10년형을 선고 받고 1989년에 만기 출소했고, 수감 중 인터뷰에서 상당한 죄책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2차 유괴
Second Kidnapping



① 사건 전말

1979년 4월 14일 8시 15분경 발생한 사건. 유괴 사건이 있은지 6개월 만에 부산시 중구 대청동 1가 메리놀 병원 앞길에서 30대 괴한에게 정효주 양이 다시 납치된 사건이다. 범인인 이원석은 가족들에게 1억 5천만원을 요구하며 돈을 주지 않을 시 신체를 일부 훼손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1차 유괴를 저질렀던 매석환이 자수를 권하는 편지를 쓰는가 하면,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정효주 양을 돌려달라 메시지를 전하는 등 일이 커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자 범인 이원석은 경주 근처 국도에 정효주 양을 두고 도주하였고, 정효주 양은 지나가던 사람의 차를 타고 경찰서로 왔는데, 발견 당시 정효주 양은 며칠째 밥을 못 먹은 상태였다고 한다. 범행 직후 명동성당, 우이동 산장 호텔 등에서 자수하겠다는 전화가 걸려오긴 했지만 모두 범인 이원석임을 알 수 없는 불명의 전화들이었고, 진짜 범인 이원석은 1980년 12월 10일 밤 11시경 김모 씨 집에서 하숙 중 사건 발생 20개월만에 자백, 검거되었다. 

② 범인: 이원석

이원석이 정효주 양 아버지의 운전기사였다는 말이 있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그는 일반 운전수였으며 위장병을 앓아 운전수 생활을 더 이상 이어나가기가 힘들어지자, 작년에 벌어졌던 1차 유괴사건이 생각나 2차 유괴를 계획했다. 그는 이전에도 차량 번호표를 바꿔 달며 이리저리 떠돌았고, 경부고속도로 망향주유소 사무실에서 여직원에게 식칼을 들이대고 돈을 훔치려다가 시민들의 방해로 미수에 그친 적도 있었다고 한다. 한편 그는 1999년, 19년만에 가석방되는데, 자신이 저지른 범행에 대한 죄책감이 컸는지 복역 중에 노동으로 취득한 150만원을 어린이들을 위해 써달라며 육영재단에 기부했으나 육영재단 측은 어렵게 모은 돈을 받을 수 없다며 거절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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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박상현 프로필 사진
    박상현 박상현 프로필   2015-08-24 15:17:03
    B102   대포폰도 있는걸요.

    유괴가 사라지고, 보이스피싱이 활성화 되었군요....

    범죄도 발전한다는....

  • B102 프로필 사진
    B102 B102 프로필   2015-08-24 10:02:08
    박상현   이제는 전화하는 순간 위치추적 돼서 바로 걸릴 듯...

  • 박상현 프로필 사진
    박상현 박상현 프로필   2015-08-21 21:42:33
    저역시 얼마전에 재미있게 본 영화입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구성된 영화에 특히 관심이 있어서, 실제 사건에 대한 정보도 알아보고

    개인 블로그에 포스팅도 했었죠.

    2차 유괴범은 저역시 운전기사로 알고 있었는데, 그렇지가 않았군요.

    당시에는 유괴사건도 참 빈번했었는데, 처벌이 강화되어서인지 90년대 이후부터는 아동유괴에 대한 뉴스를 본 기억이 거의 없네요. 사실 있어서도 안되는 범죄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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