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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녀석들 #5. 모든 장애인을 죽이려 한 군의관, 카를 게프하르트



카를 게프하르트는 나치의 의학자이자 군의관이다. 이전의 나쁜 녀석들 시리즈를 읽었던 분이라면 이 사람 역시 예사 의학자나 군의관이 아니라는 사실을 눈치채셨을 것이다. 카를 게프하르트 역시 일전에 소개한 이시이 시로, 요제프 맹겔레와 같이 인간이 행하기 힘든 끔찍한 만행을 저지른 사람 중 하나다. 

나치의 생체 실험이라면 요제프 맹겔레 편에서 낱낱히 드러나지 않았냐고 되묻는 독자가 계실 것도 같다. 필자 역시 그러기를 바랬지만 카를 게프하르트 역시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나치의 만행을 몸소 실행한 인물로, 나치가 행한 생체 실험에 광범위하게 관여했다. 따라서 요제프 맹겔레가 했던 행위를 그 역시 했다고 보면 되겠으며, 카를 게프하르트에 대한 자세한 정보 보다는 그가 행했던 잔인무도한 만행들을 자세히 알아보고자 한다.

*다소 혐오스러운 사진이 포함되어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카를 게프하르트
Karl Franz Gebhardt, 1897/11/23 ~ 1948/06/02 



① T-4 프로그램의 주창자

카를 게프하르트는 장애인이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 쓰레기들이기 때문에 지구상에서 사라지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런 생각을 기반으로 장애인 말살 계획을 세워 히틀러에게 제안했다. 히틀러는 이 제안에 박수까지 치며 동조했고, 즉시 실행에 옮기도록 독려했다고 한다. 베를린 티어가르텐 4번지(Tiergartenstraße No.4)에서 시작되어 T-4 프로그램이라 명명되었고, 이곳에 있던 4개의 병원에서 당시 독일의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각종 실험 및 학살을 행했다.

② T-4 프로그램의 진행

히틀러는 그의 저서 '나의 투쟁'에서 600년 동안 장애를 가진 인간들에게 생식을 하지 못하도록 한다면 육체와 정신에서 퇴폐의 싹이 완전히 제거된 인종이 생길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러한 히틀러의 사상을 섬긴 이들이 만든 T-4 프로그램이 가장 먼저 행한 일은 유전병을 가지고 있는 여자들을 불임시키는 일이었다. 또한 큰 저항이 없자 본격적으로 신체적, 정신적 장애를 치료한다는 명목으로 당시 독일에 거주하고 있던 장애인들을 잡아다 학살과 각종 생체 실험을 자행하기에 이른다. 이후 T-4 프로그램의 대상은 불치병을 앓고 있는 모든 사람과, 심지어는 평범한 노인들에게까지 확대된다. 나치는 이들을 가둬두고 굶겨죽이려 했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이유로 독극물 주사를 투여하기 시작했고, 이후 독극물 주사가 부족해지자 유태인을 학살할 때 쓰던 가스 샤워실 방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생체 실험
 Medical Experiment on a Living Body



① 실험 대상은 소녀

카를 게프하르트의 실험이 같은 나치 생체 실험 군의관인 요제프 멩겔라와 차별성을 가지는 이유는 실험 대상으로 유독 소녀들을 택했다는 사실이다. 대표적으로 1942년 8월에는 라펜스뷔크 강제수용소의 폴란드인 처녀 75명을 동원하여, 어떤 약품이 세균 감염을 잘 막아낼 수 있는가를 알아내기 위해 일부러 생살을 찢어 균을 주입했다. 이 세균 감염 실험에 이용된 것은 연쇄상구균, 파상풍균같은 치명적인 것들이어서 실험 대상들은 관련 질병을 앓다가 죽었고, 카를 게프하르트는 이 연구로 히틀러에게 전공 십자훈장을 받게된다.

② 고온, 냉동 실험 

그는 소녀들의 몸에 기름을 주입하거나 팔팔 끓는 기름에 넣어 죽이는 일을 하기도 했고 반대로 저체온증에 대해 연구를 한답시고 얼음물 속에 발가벗긴 여자들을 넣기도 했는데, 당연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었다. 그리고 얼음물 속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여자들은 체온을 높이기 위해 강간을 당했는데, 카를 게프하르트는 이 부분에 관한 혐의도 받고있다. 카를 게프하르트는 일련의 실험에서 피해자들이 죽으면 신체를 토막내어 수용소에서 전시를 하거나 부위별로 냉동 실험을 했다. 

③ 신체 부위를 잘라 다른 사람에게 붙이기

그가 주로 한 실험은 컴퓨터에서 문서를 작성할 때 Ctrl + C, Ctrl + V를 하듯이 신체부위를 잘라내 다른 사람의 몸에 붙이는 실험이었다. 인체의 장기는 기본이고, 팔이나 다리같은 신체부위를 잘라내기도 했으며, 몸에서 근육이나 뼈를 적출하여 다른 실험 대상에게 접합하기도 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제대로 성공할 리가 없는 무모한 실험이었다. 실험 대상자들은 앞서 말한바와 같이 대부분 어린 여자들이었으며, 대부분 마취도 안한 채 신체부위가 갈가리 찢겨나가는 고통을 경험해야 했고 실험으로 인한 부작용 속에서 죽어갔다.

③ 가장 많은 생체 실험을 자행

게프하르트는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의 패배가 확실시되자 인체실험 대상자들을 모두 처형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증거 인멸에 들어갔다. 그러나 한두명을 대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소용 없는 일이었다. 그가 행한 것으로 증거가 드러난 것으로는 살균 실험, 소이탄 실험, 냉동실험, 말라리아 실험, 신경 재생과 근육 및 뼈 이식 실험, 바닷물 주사 실험, 전염병 황달 실험 및 발진티푸스 실험 등이 있으며, 이를 통해 그가 나치가 행한 거의 모든 생체 실험에 관여했다고 볼 수 있다. 

앞서 소개한 죽음의 천사 요제프 멩겔레에게 희생된 사람들이 40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는 반면, 카를 게프하르트에게 죽은 이는 최소 60만명에서 80만명까지로 짐작되어 그 압도적인 잔혹성을 알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후
After World War II

① 악마는 반성하지 않는다

카를 게프하르트는 또다른 전범인 하인리히 힘러와 함께 평범한 병사로 행세해서 도주하려 했지만 영국군의 포로로 붙잡힌다. 1947년 8월 20일, 전후 미군 주최로 열린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그는 전쟁범죄와 인도주의에 반한 죄로 사형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자신의 죄에 대한 참회를 하지 않았으며,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라는 것이 자신의 생체실험을 도와준 사람에게 고맙다는 것이었다.

② 사망

카를 게프하르트는 처형당하기 전까지 감옥에서 심한 구타를 당했는데, 감옥의 군인들 뿐 아니라 함께 수감된 독일 죄수들에 의해서도 많이 맞았다고 한다. 아무리 나치에 충성된 사람이었다고 하더라도 한 인간으로서 그의 생체 실험에 대해 분노를 일으키지 않기란 힘든 일이었고, 여기에 그가 주창한 T-4 프로그램은 독일의 국민들, 사회적 약자들에게 적용된 학살인 탓에 그는 오히려 독일 국민의 큰 원흉이었던 것이다. 카를 게프하르트는 처형 당하던 날 새벽까지 구타를 당하다가 1948년 6월 2일, 란츠베르크 형무소에서 교수형으로 생을 마감한다.
편집 스티코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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